Running/Excellent Maker2012.01.11 14:22

[Runday] 김연수의 <달리기 구루> 제1화.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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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말
달리기는 건강해지기 위해서, 혹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매일 달리다보면 달리기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 이상의 뭔가라는 생각이 든다. 달리지 않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해도 우리는 건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일 달리기를 한다는 건 어떤 몸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여전히 매일 달리기를 하는 그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게 나로 하여금 달리게 만든다.

1.

내가 사는 도시를 사랑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거기 호수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을 달린지도 어언 5년이 다 되어간다. 가끔씩 나는 신의 눈으로 호수공원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그 눈에는 누군가의 궤적이 그리는 거대한 타원이 보일 것이다. 하루에 한 개나 두 개, 컨디션이 좋으면 세 개씩. 1년이면 적어도 300개 이상의 타원들. 인생이란 무엇인가? 지구에 타원의 궤적을 1만 개 정도 남기는 일이다.
 

이 인생이 고귀한 것은 전적으로 혼자서 그 궤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을 타원 모양으로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혼자다. 축구나 야구 같은 게 아니니까 달릴 때 동료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동료라는 건 나와 남이 얼마나 다른지 알려주는 존재일 때가 많다. 도대체 우리의 페이스라는 건 거기 없으니까. 달릴 때는 오직 자신의 페이스와 타인의 페이스밖에 없다. 저마다 모두 하나씩의 페이스. 우연히 페이스가 같을 수는 있지만, 같은 페이스로 달린다는 건 어딘지 좀 이상하다.
 

해서 호수공원을 수없이 달렸지만, 누군가와 함께 달린 적은 손에 꼽을 만했다. 언젠가 나는 1킬로미터에 5분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그 정도로 빨리 뛰진 않는다. 하지만 그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늘에는 깃털 같은 구름들이 길게 떠다녔고, 바람은 갓 만든 것처럼 신선했다. 햇살을 받은 나뭇잎들은 투명하게 반짝였다. 그런 날에는 꼭 오버페이스를 한다. 그러나 후회 같은 걸 하진 않는다. 그런 날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으면 언제 숨을 헐떡이며 달려보겠는가.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났을 때, 내 뒤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빠르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헐떡임. 내쉬는 숨결 위주의, 2백 미터 정도를 달렸는데도 숨소리는 나를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나는 약간 속도를 늦춰봤다. 그렇지만 그 숨소리는 나를 앞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숨소리가 내 페이스에 맞춰서 달린다는 걸 알았다.

그 다음에는 페이스를 올렸다. 떼버리고 싶었으니까. 나는 혼자 달리는 게 좋은 사람이었다. 과속하는 증기기관차의 엔진처럼 내 심장이 달아올랐다. 헉헉대면서도 그 숨소리는 계속 나를 따라붙었다. 그러다가 두 바퀴를 돌았을 때, 그 숨소리는 천천히 내게서 멀어졌다. 달리는 사람은 뒤를 돌아볼 수 없다. 백미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 숨소리를 내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2.

그간 여러 잡지에 달리기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달리기는 섹스와 같아서 안 해본 사람들에게는 그게 왜 좋은지 설명하기가 좀 곤란할 때가 많다.” 이건 내가 제일 먼저 쓴 달리기 글의 첫 문장이다. 지금 보니까 좋은데,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 그런 식의 광고를 닮았다. “가장 천천히 달리려고 했을 때, 나는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멀리 달렸다.” 이런 글도 썼다. 최근에 쓴 글은 다음과 같다. “달리기는 체력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습관으로 하는 운동이다.”
 

이런 글을 쓰면 이런저런 자리에서 여러 반응들을 만난다. “요즘도 달리시나요?” (네, 달립니다.) “달리기 하면 다 좋은데,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긴다더군요.” (그건 늙어가기 때문입니다.) “통일마라톤 참가자 명단에서 이름을 봤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신문사입니다. 이번 마라톤 대회 관전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참가합니다.)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나요?” (……)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나요?”
 

대답 대신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새 소설이 출간돼 여러 기자들과 함께 식사를 겸한 간담회를 하는 자리였다. 달리기를 하는 작가라고 해서 달리기에 대한 소설을 쓰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추리소설 작가들은 모두 감옥에 있어야만 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 질문을 한 여자가 보기 드문 미녀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 만난 미녀에게 해야만 하는 가장 훌륭한 대접은 그녀를 무시하는 일이겠지.
 

“습관이 될 때까지 달리면 되겠죠. 소설에 관련된 질문만 받겠습니다.”
“좀 무책임하시네요.”
그 기자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쳐다봤다. 눈과 이마가 참 아름답구나.
 

“책임질 일이 생기면 그 때 제가 책임지죠.”
“이미 생겼어요. 달리기는 체력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습관으로 하는 운동이라고 이미 쓰셨잖아요. 하지만 달리는 습관은 절대 들지 않더군요.”
“이게 제가 책임질 일입니까?”
 

함께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내가 물었다.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다. 작가의 사회적 책무, 혹은 문장이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등을 둘러싼 이견이 아니라 그런 잡담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그녀는 물론 계속할 태세였지만, 다른 기자들의 경우에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 그런 한가한 이야기를 나눌 의사가 없어보였다.
 

간담회를 마친 뒤, 함께 식당을 나설 때였다. 다들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그녀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인사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는 절박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는지 말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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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이야기를 하자면, 달리기 구루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구루라는 건 내 쪽의 호칭이지만. 5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 나는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잡지사에 다닐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까 그게 진짜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인가는 의문이 들었다. 의문에 대한 해답은 금방 구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일을 해야만 하는가? 나만의 일은 할 수 없어도 달리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장과 운동화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쇼핑몰에 가서 제일 비싼 러닝화를 한 켤레 샀다. 첫째 날, 신나게 달렸다. 날아갈 것 같았다. 달려가는데 앞에서 흰수염을 기른 노인이 뛰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여러 번 앞서 가던 사람들을 따라잡은 나였으므로 노인도 금방 앞질렀다. 이튿날에도 사람들을 앞지르며 달려가는데 그 노인이 보였다. 당연히 나는 그 노인을 또 따라잡았다. 셋째 날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바퀴를 돈 뒤, 쉬고 있는 내게 그 노인이 다가왔다.
 

“새로 나온 신발인 모양이군. 비싸 보이네.”
물론이다. 비싼 신발이었다. 노인의 운동화는 낡아보였다.
 

“그리고 내일은 비가 올 것 같아. 신은 지 사흘째 되는 신발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서로 조합하면 무슨 뜻이 될까?”
 

“내일은 헌 운동화를 신고 오라는 뜻인가요?”
노인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웃었다.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그게 무슨 소리죠?”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다음날 아침이 되자, 도무지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몇십 분을 미적거리다가 겨우 일어나서 운동화 끈을 맸다. 종아리에 알도 배었고, 머리도 지끈거렸다. 첫 날의 상쾌한 기분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노인의 말대로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다. 곧 비가 내릴지 안 내릴지 알 수 없어 텔레비전을 켜고 날씨 정보를 봤다. 비는 내린다고 돼 있었지만, 그게 언제부터 내린다는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베란다로 나가 문을 열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빗방울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비는 언제라도 내릴 수 있었다.. 다만 그게 언제인지를 모를 뿐이었다. 그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 그 날 나는 달리기를 포기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나는 노인을 금방 알아봤다. 하지만 노인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신발을 보여주고 나서야 그 전 해 가을의 일들을 기억했다. 나는 어떻게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는지 노인에게 물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늘 핑계만 찾으니까. 달리기를 하지 않을 핑계. 그 중에서 제일 쉽게 넘어가는 핑계가 바로 흐린 하늘이나 갑자기 떨어진 기온 같은 것이지. 딱 하루면 충분해. 하루를 달리지 않으면 그 다음날이라고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 리는 없지. 그리고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언제나 쏜살같이 흘러. 어제 헤어진 것 같은데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것처럼. 물론 나는 아니지만. 내겐 지난 겨울이 너무나 길고 힘들었어.”
 

“제게도 지난 겨울은 너무나 길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겠지.”
“기억나는 건? 역시 몇 번의 술자리나 여행? 많지는 않습니다만.”
“그만해도 다행이네. 그럼 즐겁게 달리게나.”
 

그 말과 함께 노인은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생각에 잠겼다가 그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1킬로미터 정도 달린 뒤에야 나는 노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남을 따라잡으려고 달리면 사흘 이상 못 달려!”
노인이 말했다.
 

“아니요. 이번에는 사흘 이상 달려보려고 따라잡은 겁니다. 그럼 어떻게 달려야만 합니까?”
내가 물었다.
 

글 / 김연수(소설가)
 

달리기를 하는 작가라고 알려진 한 작가. 그리고 그런 그에게 집요하게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는지 묻는 미모의 여기자. 그녀의 절박한 질문에 작가는 5년도 더 된 달리기 구루에 대한 옛 기억을 되살립니다. 

 

5년 전, 제일 비싼 러닝화를 신고, 앞서 가던 사람들을 제치며 신나게 달리지만 결국 사흘만에 달리기를 포기해버린 작가. 그러나 이미 그가 그럴 것이라는걸 예견했던 한 노인. 일 년 후, 작가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고 노인을 만납니다. 사흘 이상 달려보겠다며 속력을 내는데요. 과연 그는 계속 달릴 수 있을까요?

김연수의 <달리기 구루> 제2화가 이어집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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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가)

1970년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장편소설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7번국도>,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단편집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스무살>, 산문집으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 <여행할 권리>, <청춘의 문장들> 등을 출간. 번역서로 <대성당>, <기다림>, <젠틀 매드니스>, <달리기와 존재하기> 등을 옮김.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



- 블로그: http://larvatus.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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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B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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