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News & Talk2012.08.20 11:06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바로 나! 러닝의 레전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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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러너 가운데 '레전드'를 꼽으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Usainbolt)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지난 8월 12일 폐막한 '2012 런던올림픽'에서 볼트의 성적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있을 정도! 100m를 9.63초에 주파한 것은 물론, 19초 32의 기록으로 200m에서 역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4000m 계주에서까지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으니 가히 '레전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볼트에 앞서 '레전드'라 불린 사나이들이 있다. 도대체 어떤 이들이기에 사람들로부터 전설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전설의 마라토너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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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2시간 10분 30초 이내, 여자 2시간 28분 이내' 이는 소위 'A급 선수'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이 기준을 만족시키면 '골드등급' 선수로 인정받아 세계 유명 대회에 초청받는 영광을 얻게된다. 여기서 더 범위를 좁혀 '남자 2시간 5분대 이내, 여자 2시간 20분대 이내'의 기록을 달성하면, 단 32명만이 경험한 이른바 '신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지금 소개할 할리드 하누치(Khalid Khannouchi)가 바로 이 신의 영역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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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발란스 팀 소속 당시의 하누치

그의 마라톤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15살 때부터 육상을 시작한 하누치는 국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차지한 마라톤 유망주였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세계대회 출전 신청을 번번히 거절을 당한다. "세계기록과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입상 가능성이 없는 대회 출전은 의미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모로코 육상연맹의 후원을 받지 못한 하누치는 결국 조국을 등지고 1993년, '제 2의 조국' 미국으로 떠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쉽사리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하누치, 그의 마음을 다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하누치의 아내이자 코치 겸 매니저인 산드라였다. "당신은 소질이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다"라는 아내의 격려로 하누치는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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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발란스는 할리드 하누치의 세계기록 경신을 기념하며, 'RC205' 러닝화를 출시하기도 했다


마라톤에서 두 차례나 2시간 5분대를 기록한, '살아있는 마라톤 신화' 할리드 하누치! 그는 1999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마의 6분 벽을 돌파하며 2시간 5분 42초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1988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에티오피아의 딘사모가 2시간 6분 50초로 7분 벽을 깨뜨린 뒤 약 11년 6개월 만의 세계기록 경신이었다. 이후 3년 뒤인 2002년 런던 마라톤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4초가량 앞당기며(2:05:38), 인류의 꿈인 '서브2(Sub-Two)'에 가장 근접한 마라토너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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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육상 선수는 많다. 그러나 이토록 화려한 경력을 가진 육상선수가 있었을까? 에밀 자토펙(Emil Zatopek)은 트랙과 로드 장거리 종목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동시대 그와 견줄만한 경쟁자가 없었을만큼 압도적인 경기력을 발휘한 선수! 특히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0,000m, 마라톤 3개 종목을 동시 석권한 것은 다시 나오기 어려운 진기록이다. 자신의 조국 체코를 위해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갖은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한결같이 훈련에 매진했던 성실함은 모든 러너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린 시절 운동을 싫어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10대 때, 직업학교에서 신발회사의 견습공으로 일하며 언젠가는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가 살던 곳에 독일군이 진주하면서 사회주의 선동을 위한 방법으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였고, 에밀 자토펙은 강요에 의해 브르노 지방의 9km 크로스컨트리 경주에 참가하게 된다. 그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에밀은 지역 팀 코치의 권유에 의해 마지못해 육상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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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에밀은 점차 달리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숨어있던 재능과 승부 근성, 특유의 성실함으로 훈련에 몰두한 그. 현재 러너들의 단골 트레이닝법인 '인터벌 훈련'의 원형이 에밀 자토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에밀은 인터벌 훈련 외에도 두꺼운 마스크를 쓰거나, 무거운 추를 다리에 매달고 뛰는 등 남들과는 다른 기이한 훈련법으로 트레이닝에 임한 자타공인 열혈 러너이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그는 체코 육상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세계 중장거리 육상의 최강자로 군림한 그의 적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10,000m 부문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고(29:59.6), 이후 유럽선수권대회까지 석권한 에밀!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0,000m를 넘어 드디어 마라톤에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이 따라올 수 없는 월등한 실력을 선보이며 마라톤과 트랙을 합쳐 3관왕을 차지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대기록이 너무나도 당연스레 작성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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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뉴턴(Arthur Newton) 역시 특별하다. 다른 러너들이 전성기를 달릴 때 그는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다. 한창 전성기여야 할 시기에 오히려 뒤쳐져 있었던 것! 17살에 출전한 1900년 제2회 런던올림픽 마라톤(40.260km)에서는 입상을 하지 못했고, 1904년 생애 두 번째로 참가한 올림픽에서는 3시간 47분 33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909년 장거리 선수로 활동하다가, 한동안 달리기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러나 남들이 은퇴할 시기부터 뉴턴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무려 39세 때일이다. 1922년 콤레이즈 마라톤에 출전한 뉴턴은 노장이었지만 누구보다 빨랐다. 무려 90km 가까이 되는 울트라마라톤, 그것도 오르막 코스를 8시간 40분 만에 주파하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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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뉴턴은 6차례 같은 대회에 출전해 5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풀코스 이상의 장거리 경주에서 세계기록을 세웠으며 100km의 초장거리 레이스에서는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40세 전후부터 50세까지 풀코스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레이스에서 여러차례 정상을 차지한 타고난 '울트라마라토너' 아서 뉴턴! 비록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거나 공식적인 풀코 세계최고기록을 수립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세계로부터 '가장 뛰어난 장거리 선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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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상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러너를 꼽으라면 단연 고(故) 손기정 옹이 아닐까? 그는 동시대 최고의 마라토너였으며, 세계기록 경신과 함께 올림픽을 제패한 러너였고,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켜준 영웅이었다. 또한 그는 공식적으로 12년간이나 세계기록을 보유했던 독보적 존재였다.


손기정은 어린 시절, 일찌감치 '범상치 않은'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운동보다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정상적인 학업이 불가능했던 그는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운동의 길로 접어든다. 신의주 동익상회(증권회사)의 지원 하에 일과 운동을 병행했던 손기정, 평안북도 지역의 소규모 단축마라톤에 참가한 그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고, 이후 동익상회에서 동익공사로 일터를 옮기고 나서는 20여리에 이르는 거리를 달리며 출퇴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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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이 세계적인 러너가 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곳은 바로 늦깎이로 입학한, 당시 최고의 육상 명문 양정고등보통학교였다. 국내 정상급 선수들의 집합소였던 양정고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그는 각종 경기에서 수차례 우승하며, 독보적인 선수로 성장한다.


세계 정상급 마라토너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기록과 안정적인 기량을 갖추고 있던 손기정은 당시 대회에서 2위보다 12분 52초나 먼저 골인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모두가 놀랄만한 기록이었지만 식민지 시대였던 탓에 공인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1935년 열린 제8회 메이지신궁대회에서 2시간 26분 42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마라톤기록변천사에서 12년간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이 기록은 그 해 그가 세운 가장 저조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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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경기가 벌어졌던 그 대회에서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의 기록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듯, 이 경기에서 펄럭였던 것은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였다. 그러나 역사의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손기정은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해방 후 손기정은 후진 양성에 힘을 쓰며 한국 육상에 큰 기여를 한, 국민 러너이자 스포츠 영웅 그 이상이었다.



- 본문 내용 참조: 러닝 라이프

 



전설의 러너들, 그들이 '레전드'가 될 수 있었던건 선천적인 능력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흘렸던 굵은 땀방울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마음 속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들은 러너들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남아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전설'이 될 수 있을까? 여러분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용기와 자신만 있다면, 대답은 물론 예스!

Posted by NBrun
Running/Excellent Maker2012.01.09 14:38

[인터뷰] 행복한 '마라톤 퀸'이 되고 싶은, 전 마라톤 국가대표 방선희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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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최근 달리기 그리고 마라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굳이 가까운 공원이나 강변을 가지 않더라도 가벼운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뛰는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데, 요즘의 달리기 붐이 일기 전부터 대중들에게 건강과 달리기에 대한 투지를 일깨워주는 이가 있다.

바로 전 마라톤 국가대표이자 전 뉴발란스 마라톤 교실의 방선희 감독이 그 주인공.

2003년 중앙국제마라톤 대회에서 뉴발란스와 연을 맺은 이후 근 10년 가까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 중인 방선희 감독을 만나 방선희 감독의 달리기 인생과 평소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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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희 감독의 달리기 인생에 대해 그의 코치였던 김번일 감독의 이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무이한 케이스'라고. 

보통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혹은 실업팀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방선희 감독의 경우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 3년만에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그녀의 재미있는 달리기 인생은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 운동을 안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만 하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에게 운동이란 체육시간에 운동하는 정도가 저의 운동생활 전부였죠.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한 자리에 임춘애 선수의 코치였던 김번일 감독님을 뵙게 됐는데 그 자리에서 친척분이 '운동 한 번 해보라'는 소리에 얼떨결에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진짜 우연한 기회에 운동을 시작하셨네요.
네, 정말 우연이었죠. 운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보니 트레이닝 복을 살 때도 스포츠 브랜드가서 사면 되는건데 체육사에 가서 트레이닝 복을 맞추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웃음).

그렇게 시작하고 힘들지 않으셨어요?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은 이미 달리기 선수들일텐데…
고등학교 입학 전, 중 3 겨울방학부터 동계훈련 때문에 미리 감독님 집에 가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이 저랑 나이는 같지만 이미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었죠. 동계훈련 때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데 90분 동안 조깅을 하라는거에요. 90분 조깅은 운동장을 4~50바퀴 정도 도는건데, 전 두세바퀴 뛰고 나가 떨어졌어요. 그리고 걷다가 따뜻한 곳에 가서 앉아있고 그러면서 시간을 때웠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르고 도저히 여기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밥 먹고 쉬고, 점심에 또 운동하고 밥 먹고 쉬고, 저녁에는 야간 복근 운동을 하고요. 너무 지옥같아서 막 울면서 집에 전화를 했어요. '제가 돌아가면 말 잘 들을께요. 제발 저를 구출해주세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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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라며 시종일관 유쾌하게 말씀해주셨던 방선희 감독님!

그래서 집에 다시 돌아가셨나요?
사실 처음 제가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엄청 반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전 집을 떠나서 친구들과 생활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운동을 하겠다고 우기고 시작한거였죠. 게다가 제가 아는 운동선수는요. 경기 때 우승해서 선수들이 환호하는 그 모습만 떠올렸던 거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모르고요. 그래서 이미 3월에 그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건 너가 선택한 길이다'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막 울었어요. 그렇게 한 두달이 지나니 깨달은 게 있더라고요. '교실에서는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예쁨을 받고, 운동장에서는 운동 잘 하는 애가 예쁨받는구나'. 그 이후에는 무조건 따라서 열심히 달렸어요. '오늘은 10분, 내일은 15분, 그 다음 날은 20분 더 달리자' 하면서요. 그렇게 운동장 돌면서 구토도 많이 하고 했고, 독종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이후 6개월 정도 하다보니 겨우 따라가겠더라고요.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웬만해서는 해내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그리고 제가 운동을 하다보니까 선천적으로 심폐 기능이 좋았던 걸 알았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더 열심히 했던 것은 제가 그룹에서 떨어지면 저에게 뭐라고 하시는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그러면 막 혼내시는거죠. 근데 어느 날 그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걸 안 거에요. 그 이후 이를 악물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입술이 남아나질 않을 정도로요.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저에게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그렇게 고 1 상반기 6개월 운동을 하고, 하반기에 경기도 내 대회를 나갔는데 1, 2등은 아니지만 상위 클래스에 들어갔어요. 고 2 때는 전국대회를 나가면서 입상을 하고, 그리고 국가대표 후보가 됐고, 고 3때 국가대표가 됐어요. 덕분에 '혜성처럼 나타난 제2의 임춘애'라는 타이틀도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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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도중 '다시 선수 때로 돌아가라면 억만금을 줘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방선희 감독.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고 고됬는지 대화 중간중간 묻어나왔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달리기였던 만큼 결코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어릴 적 꿈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셨나요?
어릴 때는 보통 위인전을 읽고 많이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그때는 슈바이처를 보고 막연하게 의사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장 위급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근데 갑자기 달리기 선수가 됐을 때는 어떠셨어요?
제가 어떤 것에 꽂히면 거기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에요. 고등학교 때 울면서 부모님께 전화하고 부모님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냥 알아서 짐 싸고 나올 수 있는데 그렇게 안했어요. 생각해보면 저에게 주어진 환경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달리기 시작 이후에는 달리기만 눈에 들어온거죠.

'달리기는 즐기면서 해야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달리기를 시작할 때도 그렇고 괴롭고 힘든 적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저에게 달리기란 '재미있다', '행복하다'라는 건 상상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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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도에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에서 제가 우승을 했는데, 뛰면서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흔히 '데드포인트(사점, 死点)'라 말하는 36, 7km 지점을 달릴 때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더라고요. 트레이닝이 안된 일반인들 같은 경우에는 포기하거나 속도를 줄이면 되는데, 선수들은 트레이닝이 됐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속도를 줄이는게 안되요. 
 
그렇게 체력이 완전 고갈된 상태에서 밀어붙이니까 신체적 고통이 오더라고요. 뛰고있는데 다리가 저 뒤에 오는거에요. 다리에 힘이 없고 무감각해지는거죠. 그러면서 제가 주문을 외게 되더라고요. '저 차가 저에게 와서 충돌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충돌하면 쉴 수 있다는 생각. 그걸 이겨내고 달리니까 신체적인 고통에서 정신적인 고통이 오더라고요. '너가 이렇게 1등으로 들어간들 뭣하고, 조금만 포기해서 꼴등으로 들어간들 뭣하냐' 이러면서 선과 악이 싸우는거죠. 그걸 다 이기고 골인을 했고, 1등 시상대 위에 올라갔죠.

그런데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일부터 또 트레이닝을 해야하니까요.
             


말만 들어도 당시 상황이 상상이 되네요. 그럼 달리기를 하면서 좋았던 기억은 없으세요?
한 4, 5년 전에 굉장히 힘든 일이 있었어요. 체중도 10kg 정도 빠질 정도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몸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때 답답하고 갑갑하니까 바람을 쐬려고 한강을 갔는데 걷는 사람, 뛰는 사람이 많았어요. 한강 바람도 시원하고 주변을 보면서 걷다보니까 본능적으로 달리게 됐어요. 근데 그때 너무 상쾌하면서 좋은거에요. 그렇게 달리면서 당시 괴로운 일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영상처럼 떠오르면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모든 것을 다 포옹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어요(웃음). 그때 이래서 '인간은 운동을 해야하는구나' 라는걸 알게 됐죠.

하하. 그런데 달리기를 하다 힘들면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참 많으셨을텐데 힘든데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선수 때는 '내가 이것만 하고 그만둬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계속 달렸어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제가 좀 단순하고 한 가지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어서 운동세계에 들어왔으면 잘 해야하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97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이후 은퇴를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했어요.

한창 마라톤 선수로서 최고점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였는데, 갑자기 은퇴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마라톤하면 대게 몇몇 유명하고 대단한 선수를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그 선수들 외에 훌륭한 선수들이 참 많아요. 단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 사람들이 모를 뿐이죠. 그런 선수들이 은퇴를 하면 그 이후가 참 아쉬웠어요. 그래서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따지 못할 것이라면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는 공부를 시작했죠.

은퇴 후 후회한 적은 없으셨어요?
후회를 안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후회보다는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훨씬 많아요. 전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라톤이 대중화된 이 시점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보다는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적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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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매 순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 수 없었던 이유였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절정기일 때의 은퇴. 은퇴를 결심한데는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국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방선희 감독. 현재 뉴발란스 마라톤 교실의 감독으로 또 러너들의 리더로서 톡톡히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녀의 요즘, 그리고 앞으로의 꿈을 들어보자.

마라톤 교실에서 성장하는 러너들을 보면 보람을 많이 느끼시겠어요.
보통 마라톤 교실에 오시는 분들의 80% 정도가 마라톤 기록을 단축하고 싶어서, 20% 정도가 다이어트, 체력 등 건강을 위해서 오세요. 제 교육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인데요. 결국 그 사람이 행복해지는거죠.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사명감을 느끼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어릴 적 되고 싶었던 슈바이처가 된 기분이에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삶이요.

달리기 외 평소 즐기는 취미가 있으신지요?
뮤지컬이나 공연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힘든 일을 겪은 이후 일에 많이 몰두했죠. 회사, 학교, 교실 또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아카데미 클럽, 연구실 등 왔다갔다하면서요.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스트레스는 친구들 만나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커피숍에 앉아서 몇 시간씩 수다를 떨어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달려요. 달리고 나면 도인이 된 기분이 들죠. 다음 날 다시 돌아오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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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발란스'란 바로 '순리'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이나 인생의 롤모델은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 중앙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중인데 지도교수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정말 끊임없이 학문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중간중간 본인이 갖고 있는 끼를 발산하면서 마음껏 즐기세요. 교수님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일 하고, 인생을 열심히 즐겨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나 꿈은 무엇인가요?
제가 힘든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현실만 생각하고 살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런 삶이 계속 되고 있어요. 이런 와중에 한 가지 꿈을 이야기하자면, 지금 개인적으로 달리기 관련 아카데미 클럽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마추어 러너와 엘리트 러너가 공존하는 '진정한 클럽을 만들자'라는 생각을 해요. 선수들도 즐겁게 달리면서 기록을 달성하고, 선수들이 은퇴를 하더라도 그 이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문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뉴발란스 인터뷰의 마지막 공식 질문입니다. 감독님에게 '발란스'란 뭘까요?
저는 발란스를 '순리'라고 생각해요. 인생을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해야할 일 등 여러가지 일들을 순리대로 잘 지키고 사는 것이 삶에 있어서 발란스를 잘 맞추고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릴 때는 내 것이 아닌데도 탐을 낼 수도 있고, 가질 수 없는데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경향도 있잖아요. '삶의 지혜를 발휘해서 순리대로 갖춰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인생의 발란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처음 방선희 감독을 만나 인터뷰 시작 전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했었다. 주변머리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다, 포털 사이트 이메일 계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포털 사이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는게 여러개 있지만, 첫 이메일 주소는 '마라톤 퀸'입니다.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마라톤 퀸'으로 했는데, 그때 그 마음 변함없고 '마라톤 퀸'이 되고 싶은 방선희입니다."

2000년대 이전 마라톤은 선수들의 전유물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마라톤은 일반인도 도전할 수 있는 대중적인 운동이 됐다. 그리고 마라톤 붐이 막 일어날 때 방선희 감독은 마라톤 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마라톤 퀸이 되려고 노력 중이며, 마라톤 퀸이 돼는 중이라 생각한다는 방선희 감독. 방선희 감독이 꿈 꾸는대로 대한민국 아마추어 마라톤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에 한 몫하는 마라톤 퀸이 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또한 방선희 감독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달리기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잖아요. 앞만 보고 달린다라는 것은 그때 그때 충실히 최선을 다 한다는거에요.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거죠.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것."

방선희 감독의 말처럼 인생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라톤 바이러스에 함께 감염돼 보자!

Posted by NB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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