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Excellent Maker2014.07.07 17:49

[류현진 with 뉴발란스] 지금 힘들고 어려운 변화구가 날아오고 있습니까? 축하드립니다. 홈런을 칠 멋진 기회가 주어졌군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류현진 EXCELLENT HISTORY”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어차피 안될 일이라고 포기하는가? 아니면, 당당히 맞서 이겨내는가?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지만 매 순간 같은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여기, 언제나 후자를 선택해 오늘의 승리를 거머쥔 남자가 있다. 바로 LA다저스의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이다. 


한국 프로야구 투수 부문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 신인왕과 MVP까지 움켜쥐었던 절대 에이스 류현진은 7년 동안의 한국 프로야구 선수 생활 끝에 201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세 고졸 신인으로 한국 프로야구에 입단했던 류현진이 메이저리거로 거듭나 ‘코리안 몬스터’로 군림하기까지, 위기를 기회로 바꿨던 류현진의 ‘EXCELLENT HISTORY’를 뉴발란스와 함께 살펴보자! 

 



류현진의 어린 시절도 보통의 남자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심부름을 시키면 도망가거나, 투정을 부리거나 했고 개구쟁이처럼 장난도 많이 쳤다. 그런 그를 일순간에 순한 양으로 만들어 버리는 아버지의 한 마디가 있었으니, “야구장 데려갈게!” 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 류재천 씨가 처음 사준 글러브가 왼손잡이용이어서 류현진 선수가 좌완 투수가 되었다는 일화는 어린 나이에도 야구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류현진은 훈련이 힘들 거나 선배들이 심술 맞게 굴어도, 하다못해 놀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 일어도 야구하기 싫다고 도망가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오히려 “야구 좀 쉬어가면서 해라”고 염려할 정도였다. 그러면 류현진은 “아빠, 난 야구해서 평생 먹고 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아버지와 같이 틈만 나면 인천 도원야구장을 찾았던 류현진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인천 창영초등학교에서 캐치볼 테스트에 합격한 후 1996년 9월 말부터 같은 학교 야구팀에서 선수 인생을 시작했다. “현진이는 그때부터 야구 외에는 도통 다른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5~6학년 형들보다 4학년인 현진이의 폼이 더 유연하고 예뻐 ‘신동’으로 불렸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듣고 그대로 흡수했다. 승부욕이 남달라 게임에서 지고서는 분을 참지 못했다.” 고 류현진의 아버지는 회상한다.



류현진의 야구에 대한 집념, 끈기, 담대함은 부상에도 굴하지 않았다. 훈련으로 혹사당한 팔에 무리가 와서 고2 때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고, 선수생활 중단 위기를 겪었다. 매일 아침 7시, 직행버스를 타고 인천 집에서 출발해 서울 잠실 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다가 밤 9시에 귀가하는 생활을 무려 7개월 동안 지속해야 했다. 언제 마운드에 다시 설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상황. 류현진은 울지 않았다. 인상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후에 그 시절을 회고하며 류현진은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동료를 보면 견딜 수 없어서 혼자 학교 운동장을 돌고 또 돌았다.” 고 말했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이듬해 류현진은 고교야구선수권대회 주전 투수로 뛰어 모교인 인천 동산고에 우승을 선사했다. 류현진은 고통스러운 부상 시기에도 다시 마운드에 올라서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위기에 정면으로 맞섰다. 고난은 그를 꺾지 못했고, 오히려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부상과 재활치료 후 류현진은 변화구 같은 상황들을 겪어야 했다. 수술 경력 때문에 고향 연고팀인 SK의 신인 1차 지명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 전체가 부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굴하지 않았고 꿋꿋하게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류현진의 담대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2006년 신인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한화의 선택을 받았고, 첫해부터 트리플 크라운(다승·방어율·탈삼진, 3개 타이틀 동시 석권)을 달성하면서 시즌 최우수 선수상과 최우수 신인 선수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 생활의 마지막 해였던 2012년, 7년 동안 '절대 에이스'로 활약했던 류현진은 한화 팀의 부진으로 최악의 해를 보내야 했다. 


묵묵히 최고의 에이스로서 최선을 다해 투구하는 그의 야구 인생에 보답이 주어진 것일까? 2013년 류현진에게 최고의 기회가 주어진다. 메이저리그 역대 4위에 이르는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리거가 된 것이다!  


“직구보다 변화구에서 왜 홈런이 더 많이 나오는 줄 아세요? 치기는 어렵지만 일단 치면 더 많은 회전이 담긴 변화구가 힘을 받고 더 멀리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앞에 남들보다 힘들고 어려운 변화구가 날아오고 있습니까? 축하 드립니다. 당신에게 홈런을 칠 멋진 기회가 주어졌군요.”


류현진, 그의 야구인생을 말할 때 당당함과 배짱은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류현진은 3,600만 달러, 약 403억 원이란 거금 앞에서도 구단과 줄다리기를 했다. 구단이 제안한 마이너리그 조항 삽입을 거절한 것이다. 다저스는 결국 계약 시한 1초를 남겨놓고 류현진의 손을 들어줬다. 또 스프링캠프에서도 등판일 사이에 불펜 피칭을 권하는 다저스 코치진에게 “한국에선 불펜 피칭을 하지 않았다. 하던 대로 하게 해 달라”며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미국 무대에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류현진은 무모할 정도로 당당했다. 


바로 그 당당함과 배짱이 있기에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이 2014 MLB 시즌에서 LA다저스의 구원투수로서 마운드에 우뚝 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인생은 야구와 같다고 한다. 위기는 우연한 순간에 찾아온다. 최선을 다해 던진 실투가 어이없게 홈런을 맞기도 하고, 방망이를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삼진 아웃을 당하기도 한다. 우연을 이기는 대안은 하나뿐이다. 올곧게 맞서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류현진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EXCELLENT LEARNING’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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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B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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