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Excellent Maker2012.01.09 14:38

[인터뷰] 행복한 '마라톤 퀸'이 되고 싶은, 전 마라톤 국가대표 방선희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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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최근 달리기 그리고 마라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굳이 가까운 공원이나 강변을 가지 않더라도 가벼운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뛰는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데, 요즘의 달리기 붐이 일기 전부터 대중들에게 건강과 달리기에 대한 투지를 일깨워주는 이가 있다.

바로 전 마라톤 국가대표이자 전 뉴발란스 마라톤 교실의 방선희 감독이 그 주인공.

2003년 중앙국제마라톤 대회에서 뉴발란스와 연을 맺은 이후 근 10년 가까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 중인 방선희 감독을 만나 방선희 감독의 달리기 인생과 평소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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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희 감독의 달리기 인생에 대해 그의 코치였던 김번일 감독의 이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무이한 케이스'라고. 

보통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혹은 실업팀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방선희 감독의 경우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 3년만에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그녀의 재미있는 달리기 인생은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 운동을 안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만 하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에게 운동이란 체육시간에 운동하는 정도가 저의 운동생활 전부였죠.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한 자리에 임춘애 선수의 코치였던 김번일 감독님을 뵙게 됐는데 그 자리에서 친척분이 '운동 한 번 해보라'는 소리에 얼떨결에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진짜 우연한 기회에 운동을 시작하셨네요.
네, 정말 우연이었죠. 운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보니 트레이닝 복을 살 때도 스포츠 브랜드가서 사면 되는건데 체육사에 가서 트레이닝 복을 맞추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웃음).

그렇게 시작하고 힘들지 않으셨어요?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은 이미 달리기 선수들일텐데…
고등학교 입학 전, 중 3 겨울방학부터 동계훈련 때문에 미리 감독님 집에 가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이 저랑 나이는 같지만 이미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었죠. 동계훈련 때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데 90분 동안 조깅을 하라는거에요. 90분 조깅은 운동장을 4~50바퀴 정도 도는건데, 전 두세바퀴 뛰고 나가 떨어졌어요. 그리고 걷다가 따뜻한 곳에 가서 앉아있고 그러면서 시간을 때웠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르고 도저히 여기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밥 먹고 쉬고, 점심에 또 운동하고 밥 먹고 쉬고, 저녁에는 야간 복근 운동을 하고요. 너무 지옥같아서 막 울면서 집에 전화를 했어요. '제가 돌아가면 말 잘 들을께요. 제발 저를 구출해주세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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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라며 시종일관 유쾌하게 말씀해주셨던 방선희 감독님!

그래서 집에 다시 돌아가셨나요?
사실 처음 제가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엄청 반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전 집을 떠나서 친구들과 생활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운동을 하겠다고 우기고 시작한거였죠. 게다가 제가 아는 운동선수는요. 경기 때 우승해서 선수들이 환호하는 그 모습만 떠올렸던 거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모르고요. 그래서 이미 3월에 그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건 너가 선택한 길이다'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막 울었어요. 그렇게 한 두달이 지나니 깨달은 게 있더라고요. '교실에서는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예쁨을 받고, 운동장에서는 운동 잘 하는 애가 예쁨받는구나'. 그 이후에는 무조건 따라서 열심히 달렸어요. '오늘은 10분, 내일은 15분, 그 다음 날은 20분 더 달리자' 하면서요. 그렇게 운동장 돌면서 구토도 많이 하고 했고, 독종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이후 6개월 정도 하다보니 겨우 따라가겠더라고요.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웬만해서는 해내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그리고 제가 운동을 하다보니까 선천적으로 심폐 기능이 좋았던 걸 알았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더 열심히 했던 것은 제가 그룹에서 떨어지면 저에게 뭐라고 하시는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그러면 막 혼내시는거죠. 근데 어느 날 그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걸 안 거에요. 그 이후 이를 악물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입술이 남아나질 않을 정도로요.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저에게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그렇게 고 1 상반기 6개월 운동을 하고, 하반기에 경기도 내 대회를 나갔는데 1, 2등은 아니지만 상위 클래스에 들어갔어요. 고 2 때는 전국대회를 나가면서 입상을 하고, 그리고 국가대표 후보가 됐고, 고 3때 국가대표가 됐어요. 덕분에 '혜성처럼 나타난 제2의 임춘애'라는 타이틀도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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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도중 '다시 선수 때로 돌아가라면 억만금을 줘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방선희 감독.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고 고됬는지 대화 중간중간 묻어나왔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달리기였던 만큼 결코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어릴 적 꿈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셨나요?
어릴 때는 보통 위인전을 읽고 많이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그때는 슈바이처를 보고 막연하게 의사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장 위급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근데 갑자기 달리기 선수가 됐을 때는 어떠셨어요?
제가 어떤 것에 꽂히면 거기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에요. 고등학교 때 울면서 부모님께 전화하고 부모님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냥 알아서 짐 싸고 나올 수 있는데 그렇게 안했어요. 생각해보면 저에게 주어진 환경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달리기 시작 이후에는 달리기만 눈에 들어온거죠.

'달리기는 즐기면서 해야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달리기를 시작할 때도 그렇고 괴롭고 힘든 적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저에게 달리기란 '재미있다', '행복하다'라는 건 상상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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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도에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에서 제가 우승을 했는데, 뛰면서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흔히 '데드포인트(사점, 死点)'라 말하는 36, 7km 지점을 달릴 때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더라고요. 트레이닝이 안된 일반인들 같은 경우에는 포기하거나 속도를 줄이면 되는데, 선수들은 트레이닝이 됐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속도를 줄이는게 안되요. 
 
그렇게 체력이 완전 고갈된 상태에서 밀어붙이니까 신체적 고통이 오더라고요. 뛰고있는데 다리가 저 뒤에 오는거에요. 다리에 힘이 없고 무감각해지는거죠. 그러면서 제가 주문을 외게 되더라고요. '저 차가 저에게 와서 충돌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충돌하면 쉴 수 있다는 생각. 그걸 이겨내고 달리니까 신체적인 고통에서 정신적인 고통이 오더라고요. '너가 이렇게 1등으로 들어간들 뭣하고, 조금만 포기해서 꼴등으로 들어간들 뭣하냐' 이러면서 선과 악이 싸우는거죠. 그걸 다 이기고 골인을 했고, 1등 시상대 위에 올라갔죠.

그런데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일부터 또 트레이닝을 해야하니까요.
             


말만 들어도 당시 상황이 상상이 되네요. 그럼 달리기를 하면서 좋았던 기억은 없으세요?
한 4, 5년 전에 굉장히 힘든 일이 있었어요. 체중도 10kg 정도 빠질 정도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몸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때 답답하고 갑갑하니까 바람을 쐬려고 한강을 갔는데 걷는 사람, 뛰는 사람이 많았어요. 한강 바람도 시원하고 주변을 보면서 걷다보니까 본능적으로 달리게 됐어요. 근데 그때 너무 상쾌하면서 좋은거에요. 그렇게 달리면서 당시 괴로운 일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영상처럼 떠오르면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모든 것을 다 포옹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어요(웃음). 그때 이래서 '인간은 운동을 해야하는구나' 라는걸 알게 됐죠.

하하. 그런데 달리기를 하다 힘들면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참 많으셨을텐데 힘든데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선수 때는 '내가 이것만 하고 그만둬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계속 달렸어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제가 좀 단순하고 한 가지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어서 운동세계에 들어왔으면 잘 해야하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97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이후 은퇴를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했어요.

한창 마라톤 선수로서 최고점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였는데, 갑자기 은퇴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마라톤하면 대게 몇몇 유명하고 대단한 선수를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그 선수들 외에 훌륭한 선수들이 참 많아요. 단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 사람들이 모를 뿐이죠. 그런 선수들이 은퇴를 하면 그 이후가 참 아쉬웠어요. 그래서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따지 못할 것이라면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는 공부를 시작했죠.

은퇴 후 후회한 적은 없으셨어요?
후회를 안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후회보다는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훨씬 많아요. 전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라톤이 대중화된 이 시점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보다는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적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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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매 순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 수 없었던 이유였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절정기일 때의 은퇴. 은퇴를 결심한데는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국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방선희 감독. 현재 뉴발란스 마라톤 교실의 감독으로 또 러너들의 리더로서 톡톡히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녀의 요즘, 그리고 앞으로의 꿈을 들어보자.

마라톤 교실에서 성장하는 러너들을 보면 보람을 많이 느끼시겠어요.
보통 마라톤 교실에 오시는 분들의 80% 정도가 마라톤 기록을 단축하고 싶어서, 20% 정도가 다이어트, 체력 등 건강을 위해서 오세요. 제 교육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인데요. 결국 그 사람이 행복해지는거죠.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사명감을 느끼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어릴 적 되고 싶었던 슈바이처가 된 기분이에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삶이요.

달리기 외 평소 즐기는 취미가 있으신지요?
뮤지컬이나 공연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힘든 일을 겪은 이후 일에 많이 몰두했죠. 회사, 학교, 교실 또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아카데미 클럽, 연구실 등 왔다갔다하면서요.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스트레스는 친구들 만나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커피숍에 앉아서 몇 시간씩 수다를 떨어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달려요. 달리고 나면 도인이 된 기분이 들죠. 다음 날 다시 돌아오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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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발란스'란 바로 '순리'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이나 인생의 롤모델은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 중앙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중인데 지도교수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정말 끊임없이 학문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중간중간 본인이 갖고 있는 끼를 발산하면서 마음껏 즐기세요. 교수님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일 하고, 인생을 열심히 즐겨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나 꿈은 무엇인가요?
제가 힘든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현실만 생각하고 살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런 삶이 계속 되고 있어요. 이런 와중에 한 가지 꿈을 이야기하자면, 지금 개인적으로 달리기 관련 아카데미 클럽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마추어 러너와 엘리트 러너가 공존하는 '진정한 클럽을 만들자'라는 생각을 해요. 선수들도 즐겁게 달리면서 기록을 달성하고, 선수들이 은퇴를 하더라도 그 이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문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뉴발란스 인터뷰의 마지막 공식 질문입니다. 감독님에게 '발란스'란 뭘까요?
저는 발란스를 '순리'라고 생각해요. 인생을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해야할 일 등 여러가지 일들을 순리대로 잘 지키고 사는 것이 삶에 있어서 발란스를 잘 맞추고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릴 때는 내 것이 아닌데도 탐을 낼 수도 있고, 가질 수 없는데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경향도 있잖아요. '삶의 지혜를 발휘해서 순리대로 갖춰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인생의 발란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처음 방선희 감독을 만나 인터뷰 시작 전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했었다. 주변머리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다, 포털 사이트 이메일 계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포털 사이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는게 여러개 있지만, 첫 이메일 주소는 '마라톤 퀸'입니다.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마라톤 퀸'으로 했는데, 그때 그 마음 변함없고 '마라톤 퀸'이 되고 싶은 방선희입니다."

2000년대 이전 마라톤은 선수들의 전유물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마라톤은 일반인도 도전할 수 있는 대중적인 운동이 됐다. 그리고 마라톤 붐이 막 일어날 때 방선희 감독은 마라톤 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마라톤 퀸이 되려고 노력 중이며, 마라톤 퀸이 돼는 중이라 생각한다는 방선희 감독. 방선희 감독이 꿈 꾸는대로 대한민국 아마추어 마라톤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에 한 몫하는 마라톤 퀸이 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또한 방선희 감독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달리기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잖아요. 앞만 보고 달린다라는 것은 그때 그때 충실히 최선을 다 한다는거에요.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거죠.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것."

방선희 감독의 말처럼 인생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라톤 바이러스에 함께 감염돼 보자!

Posted by NB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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