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News & Talk2012.08.20 11:06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바로 나! 러닝의 레전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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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러너 가운데 '레전드'를 꼽으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Usainbolt)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지난 8월 12일 폐막한 '2012 런던올림픽'에서 볼트의 성적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있을 정도! 100m를 9.63초에 주파한 것은 물론, 19초 32의 기록으로 200m에서 역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4000m 계주에서까지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으니 가히 '레전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볼트에 앞서 '레전드'라 불린 사나이들이 있다. 도대체 어떤 이들이기에 사람들로부터 전설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전설의 마라토너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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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2시간 10분 30초 이내, 여자 2시간 28분 이내' 이는 소위 'A급 선수'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이 기준을 만족시키면 '골드등급' 선수로 인정받아 세계 유명 대회에 초청받는 영광을 얻게된다. 여기서 더 범위를 좁혀 '남자 2시간 5분대 이내, 여자 2시간 20분대 이내'의 기록을 달성하면, 단 32명만이 경험한 이른바 '신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지금 소개할 할리드 하누치(Khalid Khannouchi)가 바로 이 신의 영역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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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발란스 팀 소속 당시의 하누치

그의 마라톤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15살 때부터 육상을 시작한 하누치는 국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차지한 마라톤 유망주였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세계대회 출전 신청을 번번히 거절을 당한다. "세계기록과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입상 가능성이 없는 대회 출전은 의미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모로코 육상연맹의 후원을 받지 못한 하누치는 결국 조국을 등지고 1993년, '제 2의 조국' 미국으로 떠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쉽사리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하누치, 그의 마음을 다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하누치의 아내이자 코치 겸 매니저인 산드라였다. "당신은 소질이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다"라는 아내의 격려로 하누치는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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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발란스는 할리드 하누치의 세계기록 경신을 기념하며, 'RC205' 러닝화를 출시하기도 했다


마라톤에서 두 차례나 2시간 5분대를 기록한, '살아있는 마라톤 신화' 할리드 하누치! 그는 1999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마의 6분 벽을 돌파하며 2시간 5분 42초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1988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에티오피아의 딘사모가 2시간 6분 50초로 7분 벽을 깨뜨린 뒤 약 11년 6개월 만의 세계기록 경신이었다. 이후 3년 뒤인 2002년 런던 마라톤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4초가량 앞당기며(2:05:38), 인류의 꿈인 '서브2(Sub-Two)'에 가장 근접한 마라토너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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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육상 선수는 많다. 그러나 이토록 화려한 경력을 가진 육상선수가 있었을까? 에밀 자토펙(Emil Zatopek)은 트랙과 로드 장거리 종목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동시대 그와 견줄만한 경쟁자가 없었을만큼 압도적인 경기력을 발휘한 선수! 특히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0,000m, 마라톤 3개 종목을 동시 석권한 것은 다시 나오기 어려운 진기록이다. 자신의 조국 체코를 위해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갖은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한결같이 훈련에 매진했던 성실함은 모든 러너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린 시절 운동을 싫어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10대 때, 직업학교에서 신발회사의 견습공으로 일하며 언젠가는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가 살던 곳에 독일군이 진주하면서 사회주의 선동을 위한 방법으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였고, 에밀 자토펙은 강요에 의해 브르노 지방의 9km 크로스컨트리 경주에 참가하게 된다. 그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에밀은 지역 팀 코치의 권유에 의해 마지못해 육상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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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에밀은 점차 달리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숨어있던 재능과 승부 근성, 특유의 성실함으로 훈련에 몰두한 그. 현재 러너들의 단골 트레이닝법인 '인터벌 훈련'의 원형이 에밀 자토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에밀은 인터벌 훈련 외에도 두꺼운 마스크를 쓰거나, 무거운 추를 다리에 매달고 뛰는 등 남들과는 다른 기이한 훈련법으로 트레이닝에 임한 자타공인 열혈 러너이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그는 체코 육상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세계 중장거리 육상의 최강자로 군림한 그의 적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10,000m 부문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고(29:59.6), 이후 유럽선수권대회까지 석권한 에밀!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0,000m를 넘어 드디어 마라톤에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이 따라올 수 없는 월등한 실력을 선보이며 마라톤과 트랙을 합쳐 3관왕을 차지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대기록이 너무나도 당연스레 작성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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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뉴턴(Arthur Newton) 역시 특별하다. 다른 러너들이 전성기를 달릴 때 그는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다. 한창 전성기여야 할 시기에 오히려 뒤쳐져 있었던 것! 17살에 출전한 1900년 제2회 런던올림픽 마라톤(40.260km)에서는 입상을 하지 못했고, 1904년 생애 두 번째로 참가한 올림픽에서는 3시간 47분 33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909년 장거리 선수로 활동하다가, 한동안 달리기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러나 남들이 은퇴할 시기부터 뉴턴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무려 39세 때일이다. 1922년 콤레이즈 마라톤에 출전한 뉴턴은 노장이었지만 누구보다 빨랐다. 무려 90km 가까이 되는 울트라마라톤, 그것도 오르막 코스를 8시간 40분 만에 주파하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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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뉴턴은 6차례 같은 대회에 출전해 5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풀코스 이상의 장거리 경주에서 세계기록을 세웠으며 100km의 초장거리 레이스에서는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40세 전후부터 50세까지 풀코스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레이스에서 여러차례 정상을 차지한 타고난 '울트라마라토너' 아서 뉴턴! 비록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거나 공식적인 풀코 세계최고기록을 수립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세계로부터 '가장 뛰어난 장거리 선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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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상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러너를 꼽으라면 단연 고(故) 손기정 옹이 아닐까? 그는 동시대 최고의 마라토너였으며, 세계기록 경신과 함께 올림픽을 제패한 러너였고,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켜준 영웅이었다. 또한 그는 공식적으로 12년간이나 세계기록을 보유했던 독보적 존재였다.


손기정은 어린 시절, 일찌감치 '범상치 않은'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운동보다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정상적인 학업이 불가능했던 그는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운동의 길로 접어든다. 신의주 동익상회(증권회사)의 지원 하에 일과 운동을 병행했던 손기정, 평안북도 지역의 소규모 단축마라톤에 참가한 그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고, 이후 동익상회에서 동익공사로 일터를 옮기고 나서는 20여리에 이르는 거리를 달리며 출퇴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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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이 세계적인 러너가 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곳은 바로 늦깎이로 입학한, 당시 최고의 육상 명문 양정고등보통학교였다. 국내 정상급 선수들의 집합소였던 양정고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그는 각종 경기에서 수차례 우승하며, 독보적인 선수로 성장한다.


세계 정상급 마라토너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기록과 안정적인 기량을 갖추고 있던 손기정은 당시 대회에서 2위보다 12분 52초나 먼저 골인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모두가 놀랄만한 기록이었지만 식민지 시대였던 탓에 공인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1935년 열린 제8회 메이지신궁대회에서 2시간 26분 42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마라톤기록변천사에서 12년간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이 기록은 그 해 그가 세운 가장 저조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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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경기가 벌어졌던 그 대회에서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의 기록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듯, 이 경기에서 펄럭였던 것은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였다. 그러나 역사의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손기정은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해방 후 손기정은 후진 양성에 힘을 쓰며 한국 육상에 큰 기여를 한, 국민 러너이자 스포츠 영웅 그 이상이었다.



- 본문 내용 참조: 러닝 라이프

 



전설의 러너들, 그들이 '레전드'가 될 수 있었던건 선천적인 능력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흘렸던 굵은 땀방울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마음 속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들은 러너들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남아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전설'이 될 수 있을까? 여러분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용기와 자신만 있다면, 대답은 물론 예스!

Posted by NBrun
Running/News & Talk2012.02.02 18:59

남자? 여자! 양성(性)의 육상 선수들

누군가는 말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맞다. 우리는 1등이거나 세계신기록 혹은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내놓은 선수들을 강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1등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만년 2위 선수나 혹은 세계신기록을 세웠으나 비공식 기록으로 묻혀진 억울한 선수들의 이야기도 분명 기억한다. 아니, 때로는 1등보다 사연 많은 2등의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오늘은 달리기의 역사에서 1등이었으나, 2등으로 내려설 수 밖에 없었던 불운의 선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에 소개하는 2등의 선수들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여러분의 뇌세포 하나하나에 또렷하게 그이들의 면면이 각인될 것이다. 


자, 지금부터 1등을 했어도 2등일 수밖에 없는, 비운의 양성구유 선수들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본다.

양성구유 (androgyny, 兩性具有)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조합, 즉 자웅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남성적·여성적이라고 정의되는 특징의 결합에 기초한 정체성(正體性)을 이르는 말.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성별논란. 심심치 않게 등장해 스포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논란이다. 최근 가장 큰 이슈였던 선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육상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육상 영웅 캐스터 세메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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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다"라고 말했으나 양성자 판정을 받은 세메냐

캐스터 세메냐
당시 17세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메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 800m에서 금을 따고, 이어 2009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짧은 머리와 강인한 상체 근육 등으로 성별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남아공육상연맹에 세메냐에 대한 성별검사를 요청했고, 그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성 판결검사 결과 세메냐는 자궁과 난소가 없고,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진 양성자인 것이 밝혀진 것.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일반 여성의 3배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 호르몬을 생성하는 고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여성으로 공식 인증을 받아 메달은 박탈 당하지 않았고, 지난 22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 월드 챌린지대회 여자 800m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에 대한 성 정체성 논란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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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검사를 받고 내 꿈은 이미 산산조각났다. 나는 모든 희망을 버려야 했다. 그래서 자살까지 시도했다”

산티 순다라얀

벽돌을 굽는 근로자 집안 다셧 자녀 중 한명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영양 결핍에서 벗어날 길을 찾다가 운동을 시작했다는 인도의 산티 순다라얀. 그녀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8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성별 이상', 즉 '남성'으로 판정이나 메달을 박탈 당하고 만다.


순다라얀의 병명은 '안드로겐내성증후군(androgen resistance syndrome)'. 이는 남성호르몬 수용체에 이상이 생겨 외형 및 외부 생식기가 여성화되는 유전병이다. 메달을 박탈 당한 후 무수한 모욕과 고통을 겪어 결국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나, 지역 육상 지도자로서 새로운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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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이후 올림픽은 물론 프로경기에 절대 출전할 수 없게 된 에바

에바 클로부코브스카
메달을 딴 뒤 자격을 박탈당한 최초의 케이스는 순다라얀 전에도 있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 여자 400m 릴레이에서 우승한 폴란드의 에바 클로부코브스카는 4년 뒤인 1967년 성별 검사에서 뒤늦게 양성 반응을 보여 메달자격을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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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사건으로 사망 후, 우연히 양성자임이 드러나 세상을 놀래킨 L.A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

스탈리슬라바 발라시비치비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여자 100m에서 우승한 폴란드의 스탈리슬라바 발라시비치 역시 성별 논란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으로 이주해 스텔라 윌시라는 여자 이름으로 바꾼 발라시비치는 1980년 강도사건으로 살해됐을 당시 부검결과 남자 생식기를 가진, 양성자로 드러나 세상을 발칵 뒤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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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정부에 의해 3년간 철저히 여성으로 살았던 도라, 혹은 헤르만

도라 라트옌
1936년 베를린올림픽 당시 여자 높이뛰기에서 4위를, 1938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도라 라트옌은 나치 정부가 아예 성을 바꾼 경우이다. 헤르만 라트옌이라는 독일 남성을 여자로 '변장'시킨 뒤 대회에 출전시켰던 것.


사무켈리소 시소레
2004년 짐바브웨육상대회에서 7개 금메달을 싹쓸이 해 화제가 되었던 짐바브웨의 사무켈리소 시소레는 결국 양성자로 판명되었고, 성별을 속여 출전했다는 죄로 4년간 수감생활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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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프레스 형제'로 불렸던 그녀들은 과연 어디로?

아직 미제로 남아있는 예도 흔하다.
구소련 시절이던 1960년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합작하며 육상 스타로 군림했던 타마라-이리나 프레스 자매는 성별검사가 도입된 1968년 이후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둘은 과연 자매일까 아님 형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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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남성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으면서도 여성의 몸에 갇혀있어 늘 세상이 미웠다.”

양성구유와는 조금 다른 예이기는 하나, 촉망받던 육상 에이스에서 성전환 수술을 거쳐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한 선수도 있다.


독일 육상의 에이스로 손꼽힌 이본느 부시바움은 2년 전 성전환 수술을 받고, 한 패션잡지의 남성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1999 년 유럽 주니어챔피언십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독일 장대높이뛰기 최고의 기대주였던 그는 이듬해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해 6위를 기록했다. 2004년 개인 최고 기록인 4.70m를 넘어 유럽챔피언십 3위에 올랐으나 이후 부상을 거듭하며 선수생활에 깊은 슬럼프를 겪었다. 반복된 부상과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는 결국 2007년 대표팀 은퇴를 선언, 이듬해 성전환 수술을 받았으며 이름까지 발리안(Balian)으로 바꿔 완전한 남성으로 거듭났다.


사실 성별 검사는 미묘한 문제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성별 테스트의 신뢰성 여부와 여성 비하 위험이 있다는 비판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이를 폐지해 버린다. 하지만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이 제도를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또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성별감정실험실'이라는 성별 감정소를 등장시켰다.


성 논란이 있는 선수라고 무조건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성전환 선수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조건부로 참가할 수 있다. 성전환 후 법적으로 새 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2년간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이 그 조건이다. 남성으로 판명이 나 결국 메달을 박탈당했던 순다라얀의 경우, 자살까지 시도했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후진양성을 위해 스파이크 끈을 다시 조이기 시작했다


넘어져도 쓰러져도 결국 달리기만이 그들의 희망이었던 셈이다. 달리기란 넘어져도 일어나서 뛰어야 하는 것이니까. 비록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지라도 그들은 오늘도 묵묵히 달릴 뿐이다.

 

Posted by NB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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