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Excellent Maker2012.01.11 14:26

[Runday] 김연수의 <달리기 구루> 제2화. 나는 비로소 매일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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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짜 사흘 이상 달리고 싶다면, 일단 양쪽 귀에서 이어폰을 뽑아내시지.”
노인이 말했다.

“매일 달리는 일과 이어폰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건 눈을 감고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매일 달린다는 건 어제의 세계와 약간 다른, 거의 눈치채지 못할 만큼 달라진 세계를 달린다는 뜻이지. 그러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한, 자네는 매일 같은 세계를 달리는 셈이네. 그러니 지루해지지.”
그건 좀 신선한 의견이었다.

“전 지루해서 음악을 들었는데, 음악을 들으면 지루해진다니. 그럼 전 뭘 듣습니까?”
“안 그래도 달리는 동안 온갖 마음의 소리를 다 듣고 있잖은가? 그 소리마저도 꺼야 할 판국인데, 음악까지 들으니 달리는 게 고역일 수밖에.”
“몸이 힘든 게 고역이 아니고요?”
내가 또박또박 물었다.

“몸은 힘들지 않아. 매일 달리는 일과 체력은 상관없어. 자네는 젊잖아. 체력으로 따지자면 지금 당장이라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 거야. 고역인 건 자네의 마음이지.”

몸은 힘들지 않아. 역시 신선한 말씀. 고역인 건 나의 마음?

“내가 질문 하나 하지. 자네는 매일 달릴 수 있나?”
“그게 안 되어서 제가 지금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닙니까?”
“그럼 내가 그 방법을 가르쳐주지. 자네는 매일 달릴 수 있네. 자네가 달리고자 하면. 자네는 달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매일 달리지 못하는 거야.”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제가 왜 이러고 있겠습니까? 왜 제 진심을 몰라주십니까? 저도 달리고 싶다고요! 그것도 매일!”
“그럼 일단 그 이어폰부터 귀에서 뽑으라니까.”

그래서 난 이어폰을 뽑았다. 그 뒤로 나는 달리면서 음악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달리면서 노래 따위를 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어쨌거나 지금은 노인의 이야기를.

“자네는 매일 달리기 싫기 때문에 매일 달리지 않는 거야. 간단한 이치지.”
“그럼 결국 저 같은 사람은 달리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군요.”
“그렇지…….”

슬펐다. 새로 사서 사흘만 뛰고 처박아둔 신발은 어찌한단 말인가?

“자네가 다른 사람처럼 달리려고 하는 한. 자네는 자네처럼 달려야만 해. 다른 누구처럼 달릴 수 없어. 그걸 우리는 페이스라고 말하지. 그건 마라토너의 정체성과도 같은 거야. 처음 사흘 동안 자네는 1킬로미터 당 5분 20초의 페이스로 달렸어. 처음 뛰는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페이스야. 그건 자네의 페이스가 아니라 몇 년 동안 매일 달린 누군가 다른 사람의 페이스지. 달리기하는 동안, 자네는 거기 없었던 거야. 아마도 음악이나 듣고 있었겠지. 거기 달린 건 자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 적어도 페이스를 놓고 보면 말이야. 그러니 달리는 일이 싫증날 수밖에.”
 
“그럼 그것보다 더 천천히 달려야만 한다는 뜻입니까?”
내가 자기보다 잘 뛰기 때문에 노인이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자기 페이스를 모르는 한, 이 세상에는 천천히 달리는 것도, 빨리 달리는 것도 없다는 말일세.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는 모양인데, 나는 이만 바빠서.”
“아니, 거기까지만 말하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평생 달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놓고서 말입니다. 이 신발이 얼마짜리인지 아십니까? 이 반바지는 어떻구요?”

노인이 내 운동화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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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랬더니 뭐라고 말하셨나요?”
내게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는지 물었던 여기자가 말했다.

“‘그냥 신고 다녀도 간지는 날 텐데. 스티브 잡스도 신는 신발이잖아.’라고 말했어요…….”
“음, 뭔가 패션을 아는 할아버지군요. 그걸로 이야기가 끝인가요? 지금은 매일 달리신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지금은 매일 달립니다. 그 노인에게서 나의 페이스를 알아내는 방법을 전수받았거든요. 대신에 그 신발을 그 노인에게 줬습니다. 그러자 바로 가르쳐주더군요.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그러니 그쪽도 뭐가 그렇게 절박한 것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야지 제가 가르쳐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원하시면 직접 같이 달리면서 가르쳐드릴 수도 있어요.”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미인에게 그런 시선을 받으면 남자들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쭉 편다. 침팬지 시절부터의 습관이다. 습관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요.”
제기랄. 어깨가 축 쳐졌다.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 남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운동복도 사고, 러닝화도 샀어요. 아마도 그 쪽 것보다 더 비싼 걸 거예요. 그 남자가 처음 보는 제 모습일 텐데, 싸구려를 입고 신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에게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에요. 그 남자는 너무 빨리 뛰어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제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될 텐데요.”
“음, 보기 드문 자신감이군요. 체력만 키우면 되겠네요.”
“네. 지금까지는 타고난 체력으로 연애를 잘만 했는데, 이건 좀 어렵네요. 사흘 동안 쫓아가다가 포기했어요.”

갑자기 다음 약속 시간에 늦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약속이라면 이틀 뒤에나 있었지만 말이다.

“그 남자와 반대방향으로 달리세요. 지나칠 때 인사하구요. 저는 이만 바빠서.”
내가 돌아서려고 하자, 그녀가 내 팔을 잡았다.

“그게 아니에요. 저는 정말 우연히 알게 되는 것처럼 저를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운명인 것처럼. 서로 나란히 뛰다가 인사하면서 말이에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침에 달리기하면서 스쳐지나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진 않아요.”

그녀가 또 예의 그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어깨가 다시 쭉 펴졌다.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는 달리 입에서는 술술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자면 일단 자신의 페이스를 알아야만 합니다. 페이스를 알아내는 방법은 가능한 한 천천히 달리는 겁니다. 걸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하루에 30분 동안은 무조건 운동장에서 보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걸어가든 기어가든 죽을 만큼 빠르게 달려가든 상관이 없어요. 30분을 채우는 일이 중요하죠. 비가 와도 운동장으로 나갑니다. 우산을 쓰고 걸으면 되니까. 어쨌거나 하루에 30분은 온전하게 자신만을 위해서 쓰세요. 매일 달린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온전하게 자신만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죠. 그게 바로 자기만의 페이스로 달리는 일입니다. 그 쪽처럼 다른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서 달린다면, 글쎄요, 사흘 이상 달리기 어려울 겁니다. 다른 사람과 나란히 달릴 수는 없어요. 먼저 자기 페이스를 찾으세요."

6.

그 말을 하고 나는 인사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인 것이다.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지금 다른 남자를 따라잡으려고 한다면, 일단은 인상이 괜찮을 때 헤어지는 게 좋으니까.

노인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뒤, 나는 비로소 매일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달리는 일뿐만 아니라 천천히 걷는 일, 하늘의 구름과 달을 올려다보는 일, 걸음을 멈추고 새로 핀 꽃을 바라보는 일, 새소리를 듣고 서로 구분하는 일, 기온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리는 일, 2분 빨리 달리고 1분 천천히 달리기, 허벅지가 터지도록 언덕을 뛰어 오르기 등 그 모든 일을 다 포함하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안 뒤부터 나는 빨리 달리거나 천천히 달리지 않았다.

기록은 오르내렸지만, 나는 매일매일 변하는 내 페이스대로 달렸다. 결과는? 언제나 나는 최고로 달렸다.
 

5분 정도 걸어갔을까? 뒤에서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숨소리. 나는 숨소리를 잘 구분한다. 달리다보면 이런저런 숨소리를 들으니까. 그런데 그 숨소리는 익숙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숨소리였다. 오래지 않아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이 났다.

돌아보니 그녀였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정말 다른 사람과 나란히 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심이에요?”
내 어깨가 또 쭉 펴졌다. 글쎄, 1분 전까지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분명하지만…….

글 / 김연수(소설가)

김연수의 <달리기 구루>편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작가와 작가에게 달리기가 습관이 되는 방법을 묻는 미모의 여기자, 그리고 그 비법을 말하기 위해 노인 구루와의 옛 기억을 떠올리는 작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버무려져 있는 <달리기와 구루>!
 

지금은 매일 달리기를 하는 작가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제일 비싼 러닝화를 구입하고 앞서 가던 사람들을 제치며 신나게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결국 사흘만에 달리기를 포기하고 맙니다. 일 년 후, 그가 이럴 것이라는걸 예견했던 노인 구루에게 계속 달릴 수 있는 비법을 전수받습니다. 그 비법은 다름아닌 '달리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만의 페이스 조절'.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대게 대단한 결심을 하고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리는게 아니라 남은 이만큼 달리니까 나도 이만큼 달려야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증을 가지고 달리게 되지요. 그러나 처음 결심이 무색하게 몇 일만에 슬그머니 포기하게 되어버리는데요. 이런 초보러너들의 상황과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한 김연수 작가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매일매일 달리면 혹시 아나요? 미모의 여성(혹은 미남)이 우연을 가장해 나란히 달리게 될지.

김연수님께는 뉴발란스 러닝화 RC1225LP이 선물로 증정되었습니다.
늘 뉴발란스와 함께하며 해피~고~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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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가)


1970년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장편소설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7번국도>,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단편집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스무살>, 산문집으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 <여행할 권리>, <청춘의 문장들> 등을 출간. 번역서로 <대성당>, <기다림>, <젠틀 매드니스>, <달리기와 존재하기> 등을 옮김.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

- 블로그: http://larvatus.egloos.com

- 미투데이: http://me2day.net/Larvatus

Posted by NBrun
Running/Excellent Maker2012.01.11 14:22

[Runday] 김연수의 <달리기 구루> 제1화.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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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말
달리기는 건강해지기 위해서, 혹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매일 달리다보면 달리기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 이상의 뭔가라는 생각이 든다. 달리지 않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해도 우리는 건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일 달리기를 한다는 건 어떤 몸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여전히 매일 달리기를 하는 그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게 나로 하여금 달리게 만든다.

1.

내가 사는 도시를 사랑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거기 호수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을 달린지도 어언 5년이 다 되어간다. 가끔씩 나는 신의 눈으로 호수공원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그 눈에는 누군가의 궤적이 그리는 거대한 타원이 보일 것이다. 하루에 한 개나 두 개, 컨디션이 좋으면 세 개씩. 1년이면 적어도 300개 이상의 타원들. 인생이란 무엇인가? 지구에 타원의 궤적을 1만 개 정도 남기는 일이다.
 

이 인생이 고귀한 것은 전적으로 혼자서 그 궤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을 타원 모양으로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혼자다. 축구나 야구 같은 게 아니니까 달릴 때 동료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동료라는 건 나와 남이 얼마나 다른지 알려주는 존재일 때가 많다. 도대체 우리의 페이스라는 건 거기 없으니까. 달릴 때는 오직 자신의 페이스와 타인의 페이스밖에 없다. 저마다 모두 하나씩의 페이스. 우연히 페이스가 같을 수는 있지만, 같은 페이스로 달린다는 건 어딘지 좀 이상하다.
 

해서 호수공원을 수없이 달렸지만, 누군가와 함께 달린 적은 손에 꼽을 만했다. 언젠가 나는 1킬로미터에 5분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그 정도로 빨리 뛰진 않는다. 하지만 그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늘에는 깃털 같은 구름들이 길게 떠다녔고, 바람은 갓 만든 것처럼 신선했다. 햇살을 받은 나뭇잎들은 투명하게 반짝였다. 그런 날에는 꼭 오버페이스를 한다. 그러나 후회 같은 걸 하진 않는다. 그런 날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으면 언제 숨을 헐떡이며 달려보겠는가.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났을 때, 내 뒤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빠르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헐떡임. 내쉬는 숨결 위주의, 2백 미터 정도를 달렸는데도 숨소리는 나를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나는 약간 속도를 늦춰봤다. 그렇지만 그 숨소리는 나를 앞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숨소리가 내 페이스에 맞춰서 달린다는 걸 알았다.

그 다음에는 페이스를 올렸다. 떼버리고 싶었으니까. 나는 혼자 달리는 게 좋은 사람이었다. 과속하는 증기기관차의 엔진처럼 내 심장이 달아올랐다. 헉헉대면서도 그 숨소리는 계속 나를 따라붙었다. 그러다가 두 바퀴를 돌았을 때, 그 숨소리는 천천히 내게서 멀어졌다. 달리는 사람은 뒤를 돌아볼 수 없다. 백미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 숨소리를 내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2.

그간 여러 잡지에 달리기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달리기는 섹스와 같아서 안 해본 사람들에게는 그게 왜 좋은지 설명하기가 좀 곤란할 때가 많다.” 이건 내가 제일 먼저 쓴 달리기 글의 첫 문장이다. 지금 보니까 좋은데,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 그런 식의 광고를 닮았다. “가장 천천히 달리려고 했을 때, 나는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멀리 달렸다.” 이런 글도 썼다. 최근에 쓴 글은 다음과 같다. “달리기는 체력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습관으로 하는 운동이다.”
 

이런 글을 쓰면 이런저런 자리에서 여러 반응들을 만난다. “요즘도 달리시나요?” (네, 달립니다.) “달리기 하면 다 좋은데,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긴다더군요.” (그건 늙어가기 때문입니다.) “통일마라톤 참가자 명단에서 이름을 봤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신문사입니다. 이번 마라톤 대회 관전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참가합니다.)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나요?” (……)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나요?”
 

대답 대신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새 소설이 출간돼 여러 기자들과 함께 식사를 겸한 간담회를 하는 자리였다. 달리기를 하는 작가라고 해서 달리기에 대한 소설을 쓰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추리소설 작가들은 모두 감옥에 있어야만 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 질문을 한 여자가 보기 드문 미녀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 만난 미녀에게 해야만 하는 가장 훌륭한 대접은 그녀를 무시하는 일이겠지.
 

“습관이 될 때까지 달리면 되겠죠. 소설에 관련된 질문만 받겠습니다.”
“좀 무책임하시네요.”
그 기자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쳐다봤다. 눈과 이마가 참 아름답구나.
 

“책임질 일이 생기면 그 때 제가 책임지죠.”
“이미 생겼어요. 달리기는 체력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습관으로 하는 운동이라고 이미 쓰셨잖아요. 하지만 달리는 습관은 절대 들지 않더군요.”
“이게 제가 책임질 일입니까?”
 

함께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내가 물었다.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다. 작가의 사회적 책무, 혹은 문장이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등을 둘러싼 이견이 아니라 그런 잡담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그녀는 물론 계속할 태세였지만, 다른 기자들의 경우에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 그런 한가한 이야기를 나눌 의사가 없어보였다.
 

간담회를 마친 뒤, 함께 식당을 나설 때였다. 다들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그녀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인사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는 절박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는지 말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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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이야기를 하자면, 달리기 구루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구루라는 건 내 쪽의 호칭이지만. 5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 나는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잡지사에 다닐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까 그게 진짜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인가는 의문이 들었다. 의문에 대한 해답은 금방 구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일을 해야만 하는가? 나만의 일은 할 수 없어도 달리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장과 운동화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쇼핑몰에 가서 제일 비싼 러닝화를 한 켤레 샀다. 첫째 날, 신나게 달렸다. 날아갈 것 같았다. 달려가는데 앞에서 흰수염을 기른 노인이 뛰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여러 번 앞서 가던 사람들을 따라잡은 나였으므로 노인도 금방 앞질렀다. 이튿날에도 사람들을 앞지르며 달려가는데 그 노인이 보였다. 당연히 나는 그 노인을 또 따라잡았다. 셋째 날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바퀴를 돈 뒤, 쉬고 있는 내게 그 노인이 다가왔다.
 

“새로 나온 신발인 모양이군. 비싸 보이네.”
물론이다. 비싼 신발이었다. 노인의 운동화는 낡아보였다.
 

“그리고 내일은 비가 올 것 같아. 신은 지 사흘째 되는 신발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서로 조합하면 무슨 뜻이 될까?”
 

“내일은 헌 운동화를 신고 오라는 뜻인가요?”
노인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웃었다.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그게 무슨 소리죠?”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다음날 아침이 되자, 도무지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몇십 분을 미적거리다가 겨우 일어나서 운동화 끈을 맸다. 종아리에 알도 배었고, 머리도 지끈거렸다. 첫 날의 상쾌한 기분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노인의 말대로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다. 곧 비가 내릴지 안 내릴지 알 수 없어 텔레비전을 켜고 날씨 정보를 봤다. 비는 내린다고 돼 있었지만, 그게 언제부터 내린다는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베란다로 나가 문을 열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빗방울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비는 언제라도 내릴 수 있었다.. 다만 그게 언제인지를 모를 뿐이었다. 그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 그 날 나는 달리기를 포기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나는 노인을 금방 알아봤다. 하지만 노인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신발을 보여주고 나서야 그 전 해 가을의 일들을 기억했다. 나는 어떻게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는지 노인에게 물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늘 핑계만 찾으니까. 달리기를 하지 않을 핑계. 그 중에서 제일 쉽게 넘어가는 핑계가 바로 흐린 하늘이나 갑자기 떨어진 기온 같은 것이지. 딱 하루면 충분해. 하루를 달리지 않으면 그 다음날이라고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 리는 없지. 그리고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언제나 쏜살같이 흘러. 어제 헤어진 것 같은데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것처럼. 물론 나는 아니지만. 내겐 지난 겨울이 너무나 길고 힘들었어.”
 

“제게도 지난 겨울은 너무나 길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겠지.”
“기억나는 건? 역시 몇 번의 술자리나 여행? 많지는 않습니다만.”
“그만해도 다행이네. 그럼 즐겁게 달리게나.”
 

그 말과 함께 노인은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생각에 잠겼다가 그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1킬로미터 정도 달린 뒤에야 나는 노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남을 따라잡으려고 달리면 사흘 이상 못 달려!”
노인이 말했다.
 

“아니요. 이번에는 사흘 이상 달려보려고 따라잡은 겁니다. 그럼 어떻게 달려야만 합니까?”
내가 물었다.
 

글 / 김연수(소설가)
 

달리기를 하는 작가라고 알려진 한 작가. 그리고 그런 그에게 집요하게 어떻게 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는지 묻는 미모의 여기자. 그녀의 절박한 질문에 작가는 5년도 더 된 달리기 구루에 대한 옛 기억을 되살립니다. 

 

5년 전, 제일 비싼 러닝화를 신고, 앞서 가던 사람들을 제치며 신나게 달리지만 결국 사흘만에 달리기를 포기해버린 작가. 그러나 이미 그가 그럴 것이라는걸 예견했던 한 노인. 일 년 후, 작가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고 노인을 만납니다. 사흘 이상 달려보겠다며 속력을 내는데요. 과연 그는 계속 달릴 수 있을까요?

김연수의 <달리기 구루> 제2화가 이어집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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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가)

1970년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장편소설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7번국도>,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단편집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스무살>, 산문집으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 <여행할 권리>, <청춘의 문장들> 등을 출간. 번역서로 <대성당>, <기다림>, <젠틀 매드니스>, <달리기와 존재하기> 등을 옮김.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



- 블로그: http://larvatus.egloos.com
- 미투데이: http://me2day.net/Larv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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